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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8.23 간짜장
  3. 2015.08.21 모나 심슨의 스티브잡스 추도사
  4. 2015.08.21 진리를 찾아서
  5. 2015.08.12 아바타 .. 세태반영?
  6. 2015.08.12 정답이 중요한건 아니다 약속만이 중요할뿐
  7. 2015.08.12 한걸음더
  8. 2015.08.08 내 이름
  9. 2015.08.08 화덕피자.
  10. 2015.08.06 sin

취미생활

2015. 8. 23. 23:20 from 내글

취미란 가장 순수하게 몰입할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건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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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짜장

2015. 8. 23. 23:11 from 먹은것이야기

몇해전 모교를 방문해서 장선생님과 짜장면을 시켜먹을 때의 이야기다.


썰렁한 저녁, 장센세와 간짜장을 먹던 나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달관한 어조로 말했다. 
"십수년동안..일반짜장만 먹던 소년이 간짜장맛을 알고 어른이 되죠.." 
장센세도 웃고 나도 웃고 짜장면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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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233 :

A Sister’s Eulogy for Steve Jobs

By MONA SIMPSON
Published: October 30, 2011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독자로 자라났다. 우리는 가난했고,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 이민자였다고 들어서 아버지는 아마 오마 샤리프(Omar Sharif)를 닮잖았을까 상상하곤 했었다. 그가 부자이고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도 좀 도와주면 좋잖을까? (아직 우리 아파트에는 가구도 다 갖춰지지 않았었다.)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는 아버지가 아랍인들을 위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전화번호를 바꾼 다음에 주소도 남기지 않았다고 믿으려 노력했었다.

페미니스트이기는 했지만 나는 인생에 걸쳐, 사랑할 남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기다려 왔었다. 아무래도 그런 남자는 우리 아버지가 아닐까 싶었는데, 25살이 되던 해, 나는 오빠라는 남자를 만났다.

당시 난 첫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면서 뉴욕에 살고 있었다. 한 작은 잡지사에 일자리를 얻어 벽장만한 크기의 사무실에서 다른 작가지망생 셋과 같이 일하던 때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 변호사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들에게 직장 의료보험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캘리포니아 출신 중산층 아가씨인 내게 말이다. 그 변호사 말에 따르면, 자기 고객 중에 부자이고 유명한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이 나의 잃어버린 오빠라고 했었다. 우리들은 열광했었다. 당시는 1985년, 우리들은 최신 문학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디킨스 소설에나 나오던 음모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변호사가 오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가 누구일지 추측놀이를 시작했다. 제일 그럴듯한 후보는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였다. 다만 나는 마음 속으로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문학적인 후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별 노력 없이도 뛰어나게,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스티브를 만났다. 그 때 오빠는 청바지를 입은, 아랍계 혹은 유태계처럼 보였으며, 오마 샤리프보다 훨씬 잘생겼었다.

우린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우연히도 우리 둘 다 산책을 좋아했었는데, 사실 첫 번째 날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친구가 한 명 더 생겼거니 생각했었다. 오빠는 자기가 컴퓨터 일을 한다고 말했었다.

난 컴퓨터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작업은 올리베티(Olivetti) 수동 타자기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한테는 최근 크로멤코(Cromemco)라 불리는 컴퓨터를 한 대 구입해볼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빠는 그것도 좋긴 하지만, 자기가 미칠정도로(insanmely) 아름다운 컴퓨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빠로부터 알아낸 사실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다. 27년이 넘게 오빠를 알아왔는데,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연도에 따른 시기가 아니라, 상태에 따른 구분이다. 그의 인생 전체와 그의 병환, 그리고 그의 죽음이다.

오빠는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정말 매일같이 열심히 일했다. 

정말 간단하게 말했는데, 사실이다.

오빠는 멍한 채로 있는 적이 없었다.

결과가 실패라 할지라도 오빠는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오빠만큼 영리한 인물이면 자기가 시도했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나도 그럴 테고.

오빠가 애플로부터 쫓겨났을 때 상황은 고통스러웠다. 오빠는 실리콘밸리 지도자 500명이 당시 대통령과 만찬모임을 같이 했었는데, 자기는 초대받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오빠는 상처를 받았지만 곧바로 넥스트 일을, 또다시 매일같이 했다.

오빠가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참신함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다.

오빠는 혁신가에게 대단히 충성스러웠다. 좋은 셔츠가 있으면, 10벌이건 100벌이건 주문하기 때문이다. 팔로알토의 집에만 하더라도 장례식 때 교회에 모인 사람 모두 입을 수 있는 분량의 검정색 터틀넥이 있다.

오빠는 유행이나 술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기 나이대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미학에 대한 철학을 보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패션은 지금은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보기 흉해진다. 예술은 지금 보기 흉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아름다워진다."

오빠는 언제나 나중에 아름다워지는 쪽을 택했었다.

게다가 기꺼이 인정받지 않는 편을 택하기도 했었다.

대통령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던 오빠는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로 주문한 동일한 기종의 스포츠카를 몰고 플랫폼 개발을 조용히 진행하고 있던 넥스트로 되돌아갔다. 나중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넥스트를 사용하여 월드와이드웹 프로그램을 작성한다.

사랑에 대해 얘기한 시간만 따지면 오빠는 소녀같았다. 사랑은 오빠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였으며, 신들 중의 신이었다. 오빠는 자기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로맨스도 알아보고 걱정하곤 했었다.

근사한 여자라도 보면 오빠는 항상 말을 걸었다. "헤이, 싱글이신가요? 혹시 내 여동생이랑 저녁먹으러 오지 않을래요?"

로렌을 만났던 날 내게 전화했던 일도 기억난다. "아름다워. 정말 똑똑한 여자 중의 여자야. 그녀랑 결혼할 거야."

리드가 태어났을 때도 오빠의 마구 쏟아지는 수다는 그칠줄을 몰랐다. 오빠는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리사의 남자친구 문제를 고민하고, 에린의 여행과 치마길이를 걱정했으며, 이브의 승마가 안전한지 우려한, 아버지였다.

리드의 졸업식에 참여했다면 누구도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오빠와 리드가 같이 느리게 춤췄던 장면이다.

로렌에 대한 변치 않은 사랑이 그를 지탱시켜줬다. 오빠는 사랑이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뤄진다면서, 사랑이라는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 오빠는 절대로 비꼬거나 회의적이지 않았고 매사 긍정적이었다. 지금도 오빠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다.

오빠는 젊은 시절에 성공을 거뒀고, 그 성공때문에 자기가 고립됐다고 느꼈었다. 내가 알기로 그 때 오빠가 내린 결정 대부분은 자신을 둘러싼 벽 없애기였다. 로스알토스 출신의 중산층 소년으로서 오빠는 뉴저지 중산층 출신의 소녀와 사랑에 빠졌고, 리사와 리드, 에린, 이브를 평범하고 튼튼한 아이들로 기르는 것이 둘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오빠의 집은 예술작품이나 광택으로 겁을 주는 집이 아니다. 스티브와 로렌이 같이 살았을 때 저녁은 보통 잔디밭에서, 가끔은 딱 채소 한 가지만 갖고 먹을 때가 많았다. 딱 한 가지의 채소, 물론 양은 많았지만, 제철에 나온 브로콜리 뿐이었다. 간단히 준비한 음식이었으며, 싱싱한 허브와 곁들인 식사이기도 했다.

젊은 백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언제나 공항으로 날 맞이하러 나와줬었다. 청바지를 입고서 말이다.

업무중인 오빠에게 가족 중 누군가가 전화했던 일도 기억난다. 비서인 리네타가, "아버지는 지금 회의중이셔. 그래도 알려드릴까?"라 했었다. 

핼로윈 때마다 리드가 마녀 복장을 고집하면, 오빠와 올케, 에린과 이브는 모두 위칸(wiccan, 마법숭배자)로 변장하곤 했었다.

부엌을 리모델링할 때 가족들은 차고에 있는 철판에서 요리를 했었다. 같은 시기 픽사 빌딩이 건축중이었고 절반 정도 완성돼 있었으며 팔로알토 집도 마찬가지였다. 욕실은 오래전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이 점이 결정적인 차이랄 수 있다. 정말 훌륭한 집의 욕실이었고 오빠는 그걸 알아본 것이었다.

물론 오빠가 자신의 성공을 전혀 즐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공을 매우 많이 즐겼다. 물론 뒷자리 숫자를 몇 개 뺀 채로 말이다. 오빠는 팔로알토의 자전거 가게에 가서 제일 좋은 자전거도 자기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빠는 그 자전거를 샀다. 

오빠는 겸손했고, 계속 배우려 했다.

한 번은 자기가 다르게 자라났더라면 아마 수학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다. 대학에 대해 숭배하는듯이 말하고, 스탠포드 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인생의 마지막 시절, 오빠는 미래 애플 캠퍼스의 벽에 어떤 그림이 어울릴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이전까지 몰랐던 화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을 공부했었다. 

오빠는 기발한 생각도 자주 했다. 장미차에 쓰이는 영국과 중국 장미의 역사를 알고, 장미업자 데이비드 오스틴(David Austin)의 장미 중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미가 있는 CEO가 과연 또 있을까?

오빠는 모든 주머니에 장난거리를 가득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오빠가 좋아하는 노래, 오빠가 잘라내어서 서랍 안에 집어 넣은 시, 예외적이라 할만할 정도로 가까운 20년의 결혼관계인데도 오빠의 선물을 아마 로렌이 다 발견해낼 것이다. 매일같이 오빠에게 말했지만, 뉴욕타임스에서 애플 특허를 다룬 기사를 봤을 때 완벽한 계단에 대한 스케치 그림이 지금도 기쁘고 놀라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빠와 네 명의 아이, 올케, 우리 모두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오빠는 행복을 정말 소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오빠는 아팠다. 그의 인생이 보다 소규모로 줄어드는 광경을 우리는 지켜봤다. 한 때 그는 파리 시내를 거닐거나 쿄토의 조그마한 수제소바집을 발견하고, 우아하게 스키를 타기도 했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좀 서툴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바깥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좋은 복숭아와 같은 일상적인 기쁨도 더 이상 그에게 매력이 없게 됐다.

하지만 놀라운 점이 있다. 오빠가 아팠을 때 배웠던 교훈이다. 그 많은 것을 못 할 때조차도 얼마나 많은 것이 남아 있던지.

책상을 갖고 다시 걷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 기억난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오빠는 하루에 한 번씩 다리로 딛고 섰었다. 오빠의 다리는 몸을 지탱하기에 너무나 말라 보였지만 오빠는 과감하게 책상에서 팔을 뗐다. 멤피스 병원 복도의 간호근무실까지 책상을 밀면서 간 다음, 책상에 앉아서 잠시 쉬고 주위를 돌아본 다음 다시 걸었다. 오빠는 자신의 걸음걸이를 매일같이 세가지고 다음에는 조금씩 더 걸었다.

올케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오빠의 눈을 바라봤다. "할 수 있어요, 여보." 

그러자 오빠의 눈이 넓어졌고, 입술도 팽팽하게 당겨졌다.

오빠는 노력했다. 언제나, 언제나 노력했고, 그 노력의 안에는 언제나 사랑이 들어 있었다. 그는 전적으로 감정적인 사내였다.

오빠가 자기 자신을 위해 고통을 참어가며 그 끔찍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빠의 목표는 아들 리드의 고등학교 졸업식 참가와 딸 에린의 쿄토 여행, 그리고 언젠가 은퇴한 이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전세계를 돌아다닐 계획으로 건조중이던 보트였다.

아픈 와중에서도 오빠의 취향과 차별, 판단은 여전했다. 오빠는 67명의 간호사를 면접한 다음,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완전히 신뢰하여 오빠의 사망 때까지 자리를 지킨 간호사 세 명(트레이시와 알투로, 엘햄)을 선별했다. 

만성 폐렴에 걸렸을 때 의사는 오빠에게 모든 것을 금지했었다. 심지어 얼음도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이름을 내세우거나, 새치기를 싫어했던 오빠는 좀 특별하게 취급받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이게 특별 취급이에요. 

그러자 오빠는 내게 몸을 기울여서, "조금 더 특별하기를 원해."라 말했다.

관이 삽입됐을 때 오빠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메모장을 하나 달라고 했었다. 메모장을 받자 오빠는 병원 침실에서 아이패드를 지탱할 수 있는 기기를 스케치했고, 새로운 유동 모니터와 엑스레이 장비도 디자인했다. 오빠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병원 내 각종 장비도 다시 디자인했고, 올케가 들어올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지켜봤다.

오빠는 메모장에 이런 말을 적었다. "정말로 큰 뭔가를 하려면 날 믿어야 함." 그가 날 올려다 봤다. 너도 그래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았다. 결국 우리는 의사 몰래 얼음을 가져다 줬다.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여기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난 해, 건강이 좀 호전됐을 때 오빠는 프로젝트를 당장 시작하고는 애플 친구들을 불러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겠노라는 약속까지 끌어냈다. 네덜란드의 보트 제작자도 멋진 스테인레스 철 선체를 목재로 마감시킬 준비를 마쳤다. 세 딸은 결혼을 안 했으며(둘은 아직 어린 소녀이긴 하다), 오빠는 언젠가 내 결혼식 날 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섰던 것처럼, 딸 손을 잡고 결혼식에 들어서길 바랬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 모두 결국은 죽는다. 한 이야기의 중간, 아니 많은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다. 

수 년간 암투병을 하던 환자가 죽는다고 해서 별로 놀랍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오빠의 사망을 얘기치 못 했었다.

오빠의 죽음으로 알아낸 사실이 있다. 성격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죽는 방법도 달라진다.

화요일 아침, 오빠는 내게 급히 집으로 올 수 있겠냐고 전화했었다. 오빠 목소리는 다정했고 사랑스러웠지만 뭔가 자기 짐을 차에 싣고 여행을 떠나려는 아니, 여행을 이미 시작한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우리를 떠나서 미안하다는, 정말 미안한 목소리였다.

오빠가 작별인사를 시작하려 해서 난 성급히 오빠를 막아섰다. "기다려, 내가 가. 지금 공항 가는 택시 안이야. 내가 갈께."

"모나, 혹시 제 때 못 올까 걱정돼서 말해주는 거야."

내가 도착했을 때, 오빠와 올케는 서로 매일 같이 일하고 살아온 동료인 양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오빠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2시쯤 되자, 올케가 그를 깨웠다. 애플에서 온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그는 더 이상 깨지 못했다.

오빠의 숨소리가 바뀌었다. 힘들지만 찬찬히, 의도적인 숨소리였다. 발걸음을 다시 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오빠는 숨소리마저 훈련하고 있던 것이다. 오빠에게 죽음이란 없다. 오빠는 죽음을 이겨냈다. 

오빠가 이제 안녕이라며 항상 계획했던 것만큼 오래 못 살아서 정말 미안하고, 자기는 더 좋은 곳으로 간다고 말했다. 

피셔 박사는 그날 저녁을 넘길 확률이 50/50이라고 오빠에게 말해줬다.

오빠는 그날 밤을 넘겨냈다. 올케가 침대 옆에 붙어서 숨 사이에 정지가 좀 길어지면 오빠를 바라보곤 했었다. 오빠는 다시금 깊은 숨을 쉬었고, 올케와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해내야 한다. 지금도 오빠는 단단하고 여전히 잘생긴 얼굴, 절대주의자이자 로맨틱한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몹시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파른 길이라도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의지와 직업윤리, 힘 외에도 오빠에게는 경탄을 이끌어내는 달콤한 능력이 있었다. 나중에 더 아름다워진다는 이상을 믿는 예술가의 믿음일 것이다. 

사망 몇 시간 전, 오빠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단음절로 세 번을 반복했다.

죽기 전, 오빠는 여동생인 패티를 보고, 아이들을 오래 쳐다본 다음, 인생의 동반자, 올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 어깨 뒤를 봤다.

오빠가 했던 마지막 말이다.

OH WOW. OH WOW. OH WOW.

Mona Simpson is a novelist and a professor of English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She delivered this eulogy for her brother, Steve Jobs, on Oct. 16 at his memorial service at the Memorial Church of Stanford University.

A Sister’s Eulogy for Steve Jobs - 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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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233 :

진리를 찾아서

2015. 8. 21. 17:57 from 내글

 어렸을적엔 엄마말,아빠말 그리고 책이 진리였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이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라는 생각이상으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틀리지 않은 진실만 담고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 아니 그냥 그건 그런거였다.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엄마에게 던진 책에 있는건 다 맞냐는 물음. 그리고 그렇다는 대답.


 조금 머리가 커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인 나 또는 지금 그런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부모님의 말이나 책이 무조건 맞냐는 물음에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 당연한 사실을 자각하기까지 의외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린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책을 읽으면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고 공감할수 없는 부분도 있다. 부모님의 말대로 잘 따르는것이 항상 답이 될수 없다는것도 잘 안다. 그만큼 진리는 쉽게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 부모님, 선배, 친구, 신문, 책, 논문, 인터넷이 도움은 될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사실들을 검증하고 수집해서 그것들을 하나로 엮는 깨우침을 얻고 진리를 발견하는건 바닷가의 조개에서 진주를 발견하는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물론 그냥 저냥 그렇게 살다 갈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이 시작된 이상 인간으로서 맞닥뜨리는 질문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야 함이 마땅하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지적호기심이라는게 난 있다고본다. 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별로 흥미를 못느끼기도 한다.

 인생을 '어떻게'사는지야 방법이 많지만 '왜'사는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난 그 방법중에 하나가 누구나 명쾌함을 얻을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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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233 :
반역자 로 낙인 찍힌 우리 아바타횽이..
큰맘먹고 존내 무서운 공용같은 새괴물과 씽크 성공해서,,
돌아오니.. 순식간에 영웅대접,,

이거뭐,, 마티즈 타다 .. 여친 부모님께 갈굼 당해서 .
bmw 세븐 정도 ,, 바꾸...

아니 ..자갤이지 ..
알톤 모빅타다 ,,  티시알 어드밴스드  에스엘  정도 끌고 댕겨야 ..
관심 좀 받는 세태 반영 인듯..ㅋ 





승용물에 대한 인간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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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233 :

옛날에는 전자의 이동방향때문에 말이 많았었다


전자의 흐름에 의해서 전류가 발생한다.. 라고 처음부터 이야기 된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전자의 이동에 의해서 전류가 발생한다고 증명 된것은 처음 전류가 생기고 난 훨씬 이후죠. 뒤늦게 마이너스 전하를 띈 전자에 의해서 전류가 흐르는 것으로 밝혀 졌고,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 그리고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합니다.

(국제 규약부터 시작해서 모든 회로도에 사용되는 도표들.. 서적들 그동안 나온 전류에 관한 내용들을 어떻게 모두 바꾸겠어요.)

 

실제로 이동하는것은 전자(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이지만 상대적인 해석에서는 정공이 이동(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한다고 보아도 무방함으로 그렇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전류의 방향/전자의 방향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변경하는 리스크를 감당 할 수 없기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이래서 그냥 결국 그대로 쓰기로 한것이다

정답이 중요한게 아니다

약속만이 중요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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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더

2015. 8. 12. 00:23 from 내글

오늘은 백걸음을 위한 한걸음을 나아갔다.


누군가에게 꼭 이야기하고싶어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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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233 :

내 이름

2015. 8. 8. 01:18 from 내글

클 태 

솥귀 현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

이름대로 닮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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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피자.

2015. 8. 8. 01:12 from 내글

 그날은 올해의 첫 태풍이 지나간 날이었다. 때마침 비가 갠것은 대환영이었으나 매일 일기예보를 주시하는 나로선 당연한일인듯 누가 보면 담담한 표정이었을것이다. 예상보다 몇시간 더 비가 일찍 그친게 곧 닥칠 외출을 좀더 상쾌하게 만들수 있다고 혼자 만족스러워 했다. 병원에 다녀와야겠단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샤워를 먼저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긴지 5주나 된 하찮은 상처 때문이다. 

 상쾌했다. 샤워를 마치고 바람을 쐬며 피부의 습기가 빠져나감은 3일간 내린비가 마르는 그때와 정확히 같은 개운함이었다. 그날 더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을 나서서 아직 축축한 거리를 몇장 찍었다. 수유역에서 집에 오는길은 묘하게 기분이 좋을때가 있다. 적당히 멍때리고 있으니 어김없이 카톡이 온다. 이어 네이버지도에서 몇분걸리나 한번 확인해본다. 생각보다 지하철역은 한산했다. 여유를 느낄 틈도 없이 앵벌이하는 아줌마가 차비를 구걸하는게 쾌적한 지하철에 대한 나의 기대를 한방에 무너트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상쾌한 에어컨바람을 느끼며 옥수역에 도착했다. 역시 네이버는 거의 틀림이 없다. 그녀가 일러준곳으로 찬찬히 찾아가서 가게 앞 의자 한켠에 앉아서 주변을 괜히 두리번거린다. '더코너키친' 가게 이름을 허투루 지은게 아닌듯 가게로 오는 길은 무려 네개나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그녀들을 기다리는 남자들은 무진장 심심하다. 1번길은...역에서 오는길이니 아니고...2번도 아니고... 3번아님 4번으로 오겠네 하고 되도 않는 두뇌활동을 해본다. 옆자리가 소란해서 보니 은근히 테이크아웃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그자리를 어느 단란한 가족이 메운다. 아저씨는 꽤나 성공해보이는 중년의 모습이었는데 마침 모녀가 자리에서 보이지 않아 말을 붙여보려는 찰나에 3번 길에서 그녀가 열심히 뛰어온다. 안뛰어도 되는데 참 매너가 좋은 사람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피자는 딱 내가 원하던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처음 먹어본 샐러드는 참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메뉴였다. 다만 내가 맛있게 씹을때 그녀가 내 머릿속을 읽은듯이 느낌을 읊어줬다는게 약간 놀라울 따름이었다.

 결국 우리는 평소보다 좀더 맛있는 시간을 보냈으며 서로의 생각과 허물과 일상을 풀어놓은것이 앞으로 각자 갈길에 필요한 짐을 다시 나누는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월세 70만원짜리 작업실을 뜨거운 열기로 채우는 가마와, 그녀가 뜨거운 화덕에서 구워지는 피자를 좋아함이 어딘지 서로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손으로 잘 빚어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일까.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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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4233 :

sin

2015. 8. 6. 17:39 from 내글

 신학계의 오랜 떡밥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주권사이의 갈등이었다. 

우리는 죄를 피해갈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필연적으로 죄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축복에 가깝지 않은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억은 참으로 신기해서 그것을 마음대로 제어할수가 없다. 더 잘 기억하려하는게 쉽게 잊혀지고 별거 아닌일은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사실 기억뿐 아니라 사람의 모든것이 그렇다. 사람은 항상 자신을 보호하고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합리화'야 말로 우리가 가장 잘 드러내는 신의 섭리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과학자는 우리의 정신중에 '의식'보다 '무의식'이 더 큰 비중이라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회개할수 있는 죄보다 자연히 모르고 덮어두는 죄가 훨씬 더 많을것이다. 


난 그부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것같다.



Posted by 42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