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올해의 첫 태풍이 지나간 날이었다. 때마침 비가 갠것은 대환영이었으나 매일 일기예보를 주시하는 나로선 당연한일인듯 누가 보면 담담한 표정이었을것이다. 예상보다 몇시간 더 비가 일찍 그친게 곧 닥칠 외출을 좀더 상쾌하게 만들수 있다고 혼자 만족스러워 했다. 병원에 다녀와야겠단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샤워를 먼저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긴지 5주나 된 하찮은 상처 때문이다.
상쾌했다. 샤워를 마치고 바람을 쐬며 피부의 습기가 빠져나감은 3일간 내린비가 마르는 그때와 정확히 같은 개운함이었다. 그날 더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을 나서서 아직 축축한 거리를 몇장 찍었다. 수유역에서 집에 오는길은 묘하게 기분이 좋을때가 있다. 적당히 멍때리고 있으니 어김없이 카톡이 온다. 이어 네이버지도에서 몇분걸리나 한번 확인해본다. 생각보다 지하철역은 한산했다. 여유를 느낄 틈도 없이 앵벌이하는 아줌마가 차비를 구걸하는게 쾌적한 지하철에 대한 나의 기대를 한방에 무너트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상쾌한 에어컨바람을 느끼며 옥수역에 도착했다. 역시 네이버는 거의 틀림이 없다. 그녀가 일러준곳으로 찬찬히 찾아가서 가게 앞 의자 한켠에 앉아서 주변을 괜히 두리번거린다. '더코너키친' 가게 이름을 허투루 지은게 아닌듯 가게로 오는 길은 무려 네개나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그녀들을 기다리는 남자들은 무진장 심심하다. 1번길은...역에서 오는길이니 아니고...2번도 아니고... 3번아님 4번으로 오겠네 하고 되도 않는 두뇌활동을 해본다. 옆자리가 소란해서 보니 은근히 테이크아웃하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그자리를 어느 단란한 가족이 메운다. 아저씨는 꽤나 성공해보이는 중년의 모습이었는데 마침 모녀가 자리에서 보이지 않아 말을 붙여보려는 찰나에 3번 길에서 그녀가 열심히 뛰어온다. 안뛰어도 되는데 참 매너가 좋은 사람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피자는 딱 내가 원하던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처음 먹어본 샐러드는 참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메뉴였다. 다만 내가 맛있게 씹을때 그녀가 내 머릿속을 읽은듯이 느낌을 읊어줬다는게 약간 놀라울 따름이었다.
결국 우리는 평소보다 좀더 맛있는 시간을 보냈으며 서로의 생각과 허물과 일상을 풀어놓은것이 앞으로 각자 갈길에 필요한 짐을 다시 나누는 중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월세 70만원짜리 작업실을 뜨거운 열기로 채우는 가마와, 그녀가 뜨거운 화덕에서 구워지는 피자를 좋아함이 어딘지 서로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손으로 잘 빚어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일까.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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