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의 月
Chinese moon
중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을 때 난 허베이 성 옌산 산맥(燕山山脈) 부근의 만
리장성을 들릴 기회가 있었다. 누구도 없는 밤...나는 홀로 6400Km에 달하는
중국의 역사에 감탄하며 인류최대의 건축물과 동화되어 보려 애썼다. 내가 만
리장성에 특별한 애착을 갖는 것에는 남 다른 이유가 있다.
'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지구의 건축물은 이 것 뿐이라지...'
...나는 달을 사랑한다. 달이 품은 매력은 대충 봐서는 쉽게 건질 수 없는 것임
에 분명하지만 저 까마득한 과거부터 지구를 지켜본 달을 난 몹시도 사랑한다.
달도 지구를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구를 떠나지 않고 29.5일 동안 지구
를 쭉 둘러보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지구의 중력 때문에 달이 떠나지
못한다는 슬픈 생각 따위는 하고 싶지 않고 지구의 기분 때문에 달이 계속 표정
을 바꾼다는 남성 우월적인 생각 또한 하고 싶지 않다. 달은 어떤 표정을 지어
보여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달도 그런 이유
로 몹시 아름답다. 난 영원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수시로 바뀌는 달의 표정
은 무한한 영원의 한순간 정도로 여긴다. 화난 표정...웃는 표정...나름대로 아
름다운 것이지, 난 한 표정만 특별히 사랑하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는다.
/따르르릉/
..? 이 시간에 이곳에서 전화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전화소리가 울렸다. 분명
오른쪽 어딘가에... 달렸다. 분명 저기 저 망루에서 들리는 전화일 것이다. 그
래, 내 예상은 맞았다. 아무도 없는 망루에서는 분명 다급하게 들리는 전화벨
소리가 요동치고 있었다. -가끔 난 전화벨 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 같다는 생
각을 한다.
"여보세요?"
"...거기선 달이 보이나요?"
"여보세요? 누구세요?"
"...거기선 달이 보이나요?"
"...?"
나직한 여자의 목소리. 왜 이곳으로 전화를 걸었는지, 또 '...거기선 달이 보이
나요?'라는 당연한 말을 무슨 의미로 한 것인지 나는 종잡을 수가 없었지만 대
답했다.
"예...달이 보입니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눈을 희미하게 뜨고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달은 첫날밤
의 처녀처럼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無形의 베일을
치고 까다롭게 자신을 가린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달을 볼 때엔 살짝 바라보
는 것이 버릇이다. 그러면 달은 적어도 내게는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기를 꺼리
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달이 보이지 않아요. 달은 아름다운가요?"
"그곳은 낮이에요?"
"달은 아름다워요?"
"...그럼요. 지금 제가 보고 있는 달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과연 누구일까...보다는 왜 이런 질문을 할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내가 지금
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달
의 아름다움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거나 가식된 말로 치장할 뿐이다.
"그곳은 낮이에요?"
"아뇨. 낮이 오려면 7일 남았어요."
"...??"
퍼뜩 나는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그녀가 달에 있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결국
달에서는 '달'의 모습을 볼 수 없지 않은가. 허탈한 웃음이라도 나올 법한 생각
이지만 그렇게 생각이 드는걸...
"...당신은 지금 달에 있습니까?"
"...예"
장난 끼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전화가 달과 연결되어 나는 누군지 모를 그녀와 전설처럼 대화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물론 입니다."
"망원경으로 달을 보시면 아마 절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망원경? 내 옆에는 마치 전화기가 있었던 것처럼 고성능의 망원경이 있었
다. 난 어깨로 수화기를 잡고 망원경을 이용해서 달을 봤다. 난 평소에는 망원
경으로 달을 보는 게 마치 지하철에서 자는 척 하면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름
다운 여자의 가슴을 훔쳐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을 좋
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자세히 볼 수 있
게 허락한 것 같아서 난 별 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디...어디 있어요?"
그녀를 잘 찾을 수가 없었다. 망원경으로 보기에는 달은 너무도 넓다.
"비의 바다를 찾아보세요. 거기에 있어요."
'비의 바다...'
Mare Imbrium...천문학자 G.B. 리올리치가 'Almagestum novum'(새로운
알마게스트)에서 이름 붙인 아름다운 달의 바다중 하나이다. 실제로는 물 한
방울도 없고 공기가 없어 파도 소리도 들릴 리 없는 sea가 아닌 mare지만 지
구의 어떤 바다보다도 더욱 바다 같고 겸허한 아름다움이 즐비하다. 물이 있어
야 바다라는 억지는 생각하기 싫다.
"보여요. 당신의 모습이..."
보였다. 드넓은 '비의 바다' 한가운데에 태초부터 존재한 것처럼 보이는 전화
박스 안에서 미소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망원경 속으로 들어왔다 그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봐 온 것 같이 - 그렇게 느껴졌
다.
"거짓말."
"아니에요. 정말 확실하게 보여요."
"당신은 제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1.53초 전의 제 추억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떨어져 있어요. 당신과 나는...서로의 1.53초 전의 추억만을 공유할
수 있는 거리에..."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제가 1.53초 전의 당신의 추억을 엿볼 수 있기 때문
에...전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사랑이라는 말. 나 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긴 했지만 운명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달에는 12개의 바다가 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전부 지구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그녀가 서있는 달의 바다도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자
꾸만 우연처럼 언제나 지구를 바라보고 있다는 12개의 바다는...지금을 위해 존
재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내가 그녀와 대화하는 지금을 위해서.
"..."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1.53초 전의 그녀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가슴이 콱 막혀오는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계속 그
녀의 추억을 바라보다가 지금 이 시간, 이렇게 망원경으로 언제보다도 확실하
게 느껴지는 1.53초 전의 추억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뭘 느꼈는지...지금까지
달의 추억에 빠져 느껴오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오늘 밤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
...달은...그러니까 그녀는 계속 내게 같은 추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이다. 마치 계속 계속 같은 신호만을 보내는 길 잃은 작은 배의 구조신호처럼 -
조금도 변치 않는 슬프고 상처받은 추억의 모습을 나는 오늘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적어도 1959년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말이다...
"절 볼 수는 없겠지만 제가 있는 곳은 볼 수 있을 꺼에요...중국이 보이세요?"
"..."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픈 미소만을 보였다. - 망원경, 작은 동그라미
속에서 바라본 1.53초 전의 그녀의 모습은 그랬다.
"...? 그럼 만리장성도 안보이세요?"
"볼 수 없어요."
"볼 수 없어요?"
"...보지 못해요."
"..."
언제부터 그녀의 눈이 어둠 외에는 볼 수 없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1959
년 이후에 태어난 나로서는 그전의 그녀에 대해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내
가 50년만 더 일찍 태어났으면...장님이 아닌 그녀의 다른 모습, 다른 추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동전이 다 되었어요. 그만 끊을 시간이네요."
"잠, 잠깐만요!"
"...오래 전부터 당신과 대화하고 싶었어요. 안녕. 날 계속 지켜봐 준 사람."
"다시 전화할 수 있을까요?"
/찰칵/
"여보세요!"
"..."
그녀가 끊은 것이다. 동전이 다 되었다는 말은 변명인지도 모른다. 망원경으
로 전화가 끊어진 이후에도 계속 그녀의 모습을 -정확하게 말하면 1.53초 전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그녀가 전화를 끊은 뒤 확실하게는 보이지 않
지만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보는 기능을 상실
한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 - 비의 바다. 물 한 방울 없는 비
의 바다 한 가운데서 그녀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왜 눈물을 흘리는 거지.
나는 뭔가 불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조심해!"
두 눈이 확대되었다. 분명히 본 것이다. 그녀의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그것은 어깨에 성조기가 새겨져 있는 강철같은 우주복을 입고 있는 자였다. 그
리고 그의 손에는 비명처럼 번뜩이는 칼이 들려있었다.
"피해요! 어서 피해!"
나는 미친듯이 외쳤지만 이미 전화가 끊어진 지금 아무리 크게 외친들 달까지
목소리가 들릴리가 없다.
"제발 피하라니까!"
난 발을 세게 구르며 외쳐댔지만 그녀는 계속 전화박스에서 눈물만을 흘리고
있고 그 음침한 우주복은 어떤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베어버릴 듯한 칼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뭔가에 인기척을 느꼈는 듯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장님인 그녀가 우주복
을 볼 수는 없었다. 자기 앞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녀의 심장은
그 지독히도 날카로운 칼날에 뚫린 뒤였다.
나는 망원경에서 눈을 때었다.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리곤 구토했다. 토해버
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나는 중국의 위대한 건축물위에 내 모든
것을 쏟아버렸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달이 이미 동쪽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을 때 나는 다
시는 달을 볼 수 없다는 불안감에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 대고 비의 바다
를 찾았다.
'없다..'
한참을 찾았지만...전화박스도 앞을 못 보는 그녀의 모습도 칼을 든 우주복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연극을 끝내고 배우들이 내려간 막을 보는 기분
이었다. 난 뭔지 모를 공포에 휩싸여 그곳을 떠났고 다음날 중국을 떠났다.
지금도 나는 망원경으로 달을 보지 못한다.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다. 망원경으
로 달을 보면 자꾸만 심장이 파 해쳐져 죽은 그녀의 모습을 볼 것 같기 때문이
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지금도 내
창 옆에서 푸르스름하게 - 달은 계속 내게 자신의 추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Epilogue
내 대학시절에 천문학을 강의하던 교수가 학생들에게 달의 알베도(albedo)
는 0.073 밖에 안 된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도 달의 본질의
0.073% 밖에 모른다는 말도 덧 붙였다...그 당시 나는 그 말을 농담 정도로 들
었지만 어쩌면 정말로 사람들은 달의 0.073%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은 지구에게 자신의 뒷면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지구에서는 절대로 달
의 한쪽 면은 볼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 달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
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구를 보면서 느낀 자신의 아픈 기억들
따위를 달은 자신의 뒷면에 감추어 놓는다. 지구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그런데 인간들은 중력을 벗어나고 달에 접근해서 결국 억지로 달이 보여
주기 싫은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냈고 달의 눈동자에 성조기를 꼽아 달에게 지
워지지 않을 생채기를 남겼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본 것은 1959년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