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主

2015. 6. 16. 23:47 from 명작의 조각들

2010.11.30  


喪主    -金振成



아버지는 신 앞에서 아들이 되고

아들은 죽음 앞에서 아버지가 된다

 

가끔은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고

시를 생각하지 않는 날도 있고

펜을 잡은 내 손이 어색해지는 그런 날도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골수검사를 받으려 했던 날

백혈병으로 허무하게 죽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남보다도 못했다

아버지는 더 초라해지려했다

위대함은 초라함의 동의어가 아닐까

3일 간의 나는 뭐랄까

잠깐 세상을 맛보았달까

친구도 읽었고

수능 50일과 완치를 앞두고 

아버지를 곁에 두려하신 신의 사랑도 느꼈고

나의 짐을 나눠 질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섭섭함과 서운함과 고마움의 적절한 배합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까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지만

부모는 자신을 원망한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우리 모두는 함께했던 

그러나 사소했던 것을 기억하며 슬퍼한다는 것도

 

그 날, 십만원이 넘는 캐쥬얼 구두를 처음 신어봤다

다 찢어진 캔버스화

병원에 신고간 삼선 슬리퍼

그 날 생긴 그 구두가 

내 아버지의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 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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